하이힐, 어디에서 왔을까요?
하이힐은 오늘날의 이란인 페르시아에서 왔는데, 처음에는 승마용 신발이었어요. 굽이 있으면 기수가 등자에서 발이 빠지지 않았거든요. 1600년 무렵 페르시아가 유럽의 눈길을 끌면서 유럽 상류층 남성들이 굽 있는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, 곧 여성들도 뒤따랐어요.
등자를 위한 굽
근동의 기마 문화에서 굽은 실용적인 것이었어요. 토론토 바타 신발 박물관의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자신이 본 굽 있는 신발의 가장 오래된 그림이 9세기 페르시아 도자기 그릇에 그려진, 기수가 신은 굽 있는 부츠라고 말해요. 페르시아의 전쟁에서는 뛰어난 승마 실력이 꼭 필요했어요. 병사가 등자를 딛고 일어설 때 굽이 자세를 단단히 잡아 줘 활을 쏠 수 있었어요. 카우보이 부츠에는 지금도 그 승마용 굽이 남아 있어요.
유럽에 닿은 페르시아 패션
16세기 말, 페르시아의 샤 아바스 1세는 오스만 제국에 맞설 서유럽의 동맹을 원했어요. 1599년 그는 첫 페르시아 외교 사절단을 유럽으로, 러시아와 독일, 스페인의 궁정으로 보냈고, 그 뒤 페르시아의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이 물결처럼 일었어요. 귀족 남성들은 남자다워 보이려고 페르시아식 굽 있는 신발을 신었어요. 굽이 사회 아래층으로 퍼지자 상류층은 자기들 굽을 더 높였고, 진창투성이인 17세기 거리에서는 그 비실용성이야말로 핵심이었어요.
왜 프랑스라고 생각할까
프랑스는 굽을 특권의 표시로 만들었어요. 루이 14세는 흔히 전투 장면으로 장식한 굽으로 키를 약 10cm 높였고, 그 신발들의 굽과 밑창은 언제나 비싼 염료로 물들인 빨간색이었어요. 1670년대에 그는 자기 궁정 사람들만 빨간 굽을 신을 수 있다고 명했어요. 여성들은 남성적인 옷차림이 유행하던 1630년대에 굽을 받아들였어요. 나중에 남성의 굽은 더 각지고 낮아졌고, 여성의 굽은 더 가늘어졌으며, 1740년에는 남성들이 굽을 버렸어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