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스트레일리안 풋볼, 어디에서 왔을까요?
오스트레일리안 풋볼은 멜버른에서 왔어요. 1858년 크리켓 선수들과 학생들이 도시의 공원 녹지에서 하기 시작한 풋볼에서 자라났고, 1859년 5월 멜버른 풋볼 클럽 회원들이 이 경기의 첫 규칙을 글로 남겼어요.
크리켓 선수의 편지
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비중 있는 크리켓 선수로 꼽히는 톰 윌스는 10대 시절 잉글랜드의 럭비 스쿨에서 초기 형태의 럭비 풋볼을 했어요. 1858년 7월 10일 신문 ‘벨스 라이프’에 그의 편지가 실렸어요. 겨울이라 크리켓 시즌이 끝났으니, 크리켓 선수들이 ‘풋볼 클럽을 만들고, 세 사람 이상으로 위원회를 꾸려 규칙을 정하면’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어요. 2주 뒤 그는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 옆 리치먼드 패덕에서 경기를 열고 있었어요.
호텔에서 정한 열 가지 규칙
1858년 8월, 멜버른 그래머 스쿨과 스카치 칼리지가 그곳에서 유명한 경기를 벌였어요. 한 팀이 40명이었고, 둥근 공을 썼으며, 두 골대는 약 반 마일 떨어져 있었어요. 윌스는 심판 가운데 한 명이었어요. 1859년 5월 17일, 윌스는 기자 윌리엄 해머즐리, 제임스 톰프슨과 함께 크리켓 경기장 근처의 퍼레이드 호텔에 모였고, 대부분의 기록은 교사 토머스 스미스도 함께였다고 전해요. 윌스는 럭비 규칙을 제안했지만, 해머즐리의 회고에 따르면 그 규칙을 이해한 사람은 윌스 자신뿐이었어요. 그래서 그들은 대신 간단한 규칙 열 가지를 썼고, 그 손으로 쓴 사본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.
독자적인 경기로
창시자들은 영국 여러 학교의 규칙을 살펴보면서 규칙을 단순하게 유지했는데, 멜버른의 딱딱한 경기장에서 거친 플레이를 줄이려는 뜻도 있었어요. 발을 걸거나 미는 건 허용됐지만, 상대의 정강이를 차는 해킹은 금지됐어요. 오프사이드 규칙은 없었고, 킥된 공을 곧바로 잡은 선수는 ‘마크’를 외치고 프리킥을 얻을 수 있었어요. 1877년에는 도시와 지방의 14개 클럽이 협회를 만들었고, 이 경기는 독자적인 풋볼 종목이 됐어요.
출처: en.wikipedia.org › Origins of Australian rules football ↗ · en.wikipedia.org › Tom Wills ↗ · afl.com.au ↗